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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4년째 입양가정 대상 요리 강좌 운영

“갖고 있는 지식을 함께 나누는 게 즐거워요.” 뉴저지 여성사회봉사센터(AWCA)가 운영하는 한인 입양아를 위한 한국학교 ‘엔젤스쿨’에서 요리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우영순(62·사진)씨. 브롱스에 있는 ‘도터스 오브 제이콥 널싱홈’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우씨는 주말 시간을 이용해 입양아 부모들에게 2~3차례씩 요리 강습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봉사한 것이 벌써 4년째를 맞았다. 우씨의 요리 강습은 한인 입양아 부모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자녀들에게 직접 만든 한국 요리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에 즐겁기 때문이다. 우씨는 “입양 부모들이 더 열심”이라며 “메뉴를 직접 선정해 요리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1969년 이민온 우씨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결혼 후 한국에서 생활하다 1999년 미국으로 다시 이주했다. 요리 강습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10여 가정 정도가 먹을 분량의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도구도 챙겨 엔젤스쿨로 향한다. 급한 마음에 길을 막고 서있는 사복경찰 차량에게 비키라고 경적을 울렸다가 티켓을 받은 적도 있다. 우씨는 “수업에 늦을 지 모른다는 급한 마음에 경적을 울렸는데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며 티켓을 받았다”며 멋적은 미소를 보였다. 요리 강습은 학생과 부모가 모두 참여한다. 4~5개 테이블에 그날 만들 요리의 재료가 준비되면 우씨의 지시를 따라 음식을 만든다. 요리 강습은 농담과 함께 재미있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엄마들은 설명을 듣고 따라하느라 열심이지만 시큰둥한 학생들도 있어요. 그래도 시식 시간에는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겹지요. 처음 먹어보면서도 금새 좋아하는 입양아들을 보면 이래서 한국인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씨는 “양부모들은 입양 자녀가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가르친다”며 “자녀에게 뿌리교육을 시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입양 부모들은 집에 가서 다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잘 안되는 점과 재료 구입처 등을 많이 문의한다. 미국 마켓과 한인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달라 헷갈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씨는 “뉴저지에 대형 한인 마켓도 있지만 입양 부모들이 원하는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미국인을 위한 가이드나 요리 강좌 등이 있으면 한국 음식 문화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홈디포가 집수리 강좌를 운영하듯 한인 마켓도 한국 음식 강좌가 있으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한인을 위한 통역 자원봉사도 계획하고 있다. 우씨는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많이 본다”며 “이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은무 기자 emchoi@koreadaily.com

2009-12-11

[송년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노인아파트서 혼자 살며 매일 7시간씩 급식 봉사

“몸 멀쩡한데 그냥 놀리면 뭐 합니까. 이렇게라도 나와서 남 돕는 일 하는게 더 좋아요.” 플러싱 커뮤니티경로센터 자원봉사자 김정애(72)씨. 김씨가 하는 일은 센터에서 급식으로 제공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2004년부터 시작해 벌써 6년째.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주위에서는 “뒤에서 보면 아가씨”라고 할 정도로 정정하다. 주방일을 돕고 있는 7~8명의 자원봉사자 중 가장 고령자임에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을 정도로 매사에 긍정적이고 쾌할한 성격이다. 센터에서의 자원봉사도 누구의 권유없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한 지인의 소개로 센터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 후 직접 찾아와서 “아무 일이나 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 후부터 매일 오전 7시 30분이면 센터로 출근해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오후 2시까지 남아 뒷정리까지 하고 나서야 퇴근한다. 밥과 국, 반찬 3~4가지로 이루어지는 센터 급식은 매일 식단이 바뀌기 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음식 종류도 매일같이 다르다. 김씨는 반찬 만들기가 주 업무다. 나이 덕에 부주방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간을 볼 때는 다른 봉사자들과 ‘합의’를 한 뒤 내놓는다. 지난 1970년 남편과 함께 이민 온 김씨는 15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당시 옐로택시 사업체를 운영하던 남편이 폐암과 위암으로 건강을 잃었고, 결국 먼저 보낸 뒤 지금은 플러싱 34애브뉴에 있는 노인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자녀 없이 두 부부가 평생을 살아왔다는 김씨, 그러나 오빠와 언니 등 형제가 많이 살고 있어 조카들이 많다고 오히려 자랑한다. “저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조카들이 많아 전혀 외롭지 않아요. 그 아이들이 내 자식들이나 마찬가지예요.” 김씨의 형제들은 김씨보다도 10여년이나 먼저 이민와 정착했다. 덕분에 그 후손들이 지금은 주류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플러싱 관할 109경찰서 형사과 심재일 형사도 김씨의 조카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2009-12-10

[송년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수강생 실력 늘수록 보람도 ‘쑥쑥'…성악과 출신으로 8년 봉사

“학생들의 노래 실력이 늘수록 가르침의 보람은 더욱 커집니다.” 뉴저지 FGS 코리안커뮤니티센터(KCC)에서 8년째 한인 노인들에게 무료로 노래를 가르치는 이해경·남옥우 교사. 이들은 2001년부터 매주 화요일 열리는 노래교실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한시간동안 노인들에게 노래지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악보 읽기, 합창, 화음 등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아름다운 노래 실력을 이끌어냈다. 두 교사들의 열정은 노래 교실이 FGS KCC강좌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유지 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56년 이민온 이해경 교사는 “물질적인 봉사보다 몸과 마음으로 남을 돕고 싶어 자청했다”며 “한인 노인들이 노래를 통해 건강과 젊음을 찾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 남옥우 교사는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봉사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며 “몸이 안 좋아 쉬고 싶어도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빠질 수가 없다”고 밝혔다. 노래교실은 고교 음악 수업과 비슷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중앙여자중고에서 음악교사를 지내다 80년 이민온 남씨가 작은 실수까지 지적하며 학생들에게 ‘채찍질’을 하면 이 교사는 칭찬을 통해 학생들에게 용기를 실어주는 ‘당근’ 역할을 한다. 노래교실 학생들의 실력도 날로 발전해 정기 양로원 위문 공연을 나설 정도다. 평소에 목소리가 작은 노인들도 수업 시간만 되면 자신의 좋아하는 노래를 목청껏 신나게 부르며 젊음을 되찾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자비를 털어 피아노를 조율하고 수업에 필요한 CD를 구입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다. 두 교사는 “한인 노인들이 노래를 통해 건강과 젊음을 찾을 수 있다면 건강이 허락되는 한 수업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훈 기자 star@koreadaily.com

2009-12-09

[송년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점심 한 끼로 ‘사랑 바이러스’ 전파

할렘 무료 급식소 봉사 김명희씨 지난 8일 맨해튼 124스트릿 할렘 한복판에 있는 소울세이빙스테이션 무료 급식소. 브니엘선교회 김명희(56) 선교사는 오늘도 이곳에서 ‘밥 당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의 메뉴는 피시 버거와 애플 주스. 피시 버거를 받아 들고 즐거워 하는 가난한 이들을 보면서 김씨는 마냥 흡족한 표정이다. 김씨가 뉴욕의 대표적인 슬럼가인 이곳 맨해튼 할렘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 13년간 매주 화요일이면 이곳에 나와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점심 배급 봉사를 해왔다. 얼핏 보면 소녀처럼 여리고 수줍음을 많이 탈 것 같지만, 덩치 큰 흑인 300여명을 아들·딸 처럼 여기는 ‘대모’ 같은 존재다. 이곳 급식소를 찾는 주민들은 13년전 40여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300여명에 이른다. 경기침체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무료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점심 한끼로 하루를 때우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왜 하필 할렘에서 봉사하냐고 물어요. 할렘은 집과 가족이 없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이지요. 그래서 이곳을 택했어요. 이들이 따뜻한 점심을 먹고 사랑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김씨는 또 이곳에서 끼니를 때우던 흑인들이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이곳에 와서 직원이 됐을 때, 알코올과 마약을 끊고 자원봉사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보람을 느낀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뜨거워져요. 그런 변화들이 제가 13년 동안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요.” 한 때 자기들을 위해 시간을 쓰지 않고 남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하던 자녀들도 나중에는 함께 봉사를 하기도 하고, 이제는 커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단다. 김 씨는 햄버거 같은 양식만 고집하지 않고 가끔 불고기 같은 한식을 서비스 하기도 한다. 8일에 열린 무료 배식 행사에는 뉴저지 필그림교회도 참여했다. 장갑과 목도리 등 크리스마스 선물을 홈리스 300여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가 함께 부른 캐롤은 삭막한 할렘을 사랑이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용복 인턴기자 lyb8686@koreadaily.com

2009-12-09

[송년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매달 한 번 어르신 머리 손질…회장 바뀌어도 전통은 그대로

"어머니, 한달새 머리가 많이 길었어요. 제가 예쁘게 손질해 드릴께요.” 한미미용인연합회 허미경 회장은 매월 마지막주 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코로나경로회관을 찾는다. 이날은 연합회가 ‘이발 봉사’를 하는 날. 지난 2001년 제3대 회장 당시부터 시작된 이발 봉사는 그동안 회장이 수차례 바뀌었지만 올해까지 8년째 계속되며 연합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노인들도 월말이 되면 연합회 회원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당일 시간이 허락되는 7~8명의 임원, 회원들이 참여합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동안 진행되는데, 보통 50여명의 머리를 손질해 드려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본인의 헤어스타일에 만족해 하시면서, 몇번이고 고맙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노인들은 굳이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훌륭한 실력을 갖춘 미용사들이 경로회관까지 찾아와주니 기쁠 따름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이발비를 아낄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허 회장은 이발 봉사가 시작된 계기에 대해 “미용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좀 더 의미있는 곳에 사용하자는 선배님들의 뜻이 모아져 시작됐다”면서 “모두들 업소 일을 제쳐두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또 “연합회 일부 회원들은 효신장로교회, 퀸즈한인천주교회, 실로암교회도 방문해 별도로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면서 “코로나경로회관에서 정기적으로 이발 봉사를 하는 모습에 동화된 일부 회원들이 연합회와는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회장은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발을 해줄때마다 고맙다며 몇달러씩 저희들에게 팁을 주신다”면서 “이렇게 모아진 팁이 연말이면 1000여달러에 이르는데, 이 돈에 저희가 조금 보태서 노인들에게 필요한 양말, 헤어제품 등을 구입해 선물로 전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회장은 한인 노인이 많이 입주한 양로원에서도 이발 봉사를 할 계획이었지만, 양로원측의 위생 규정이 까다로워 성사시키지 못했다면서 아쉬워 했다. 안준용 기자 jyahn@koreadaily.com

2009-12-07

[송년기획-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7년간 주 6일 '밥 당번'…장애아 식습관 훤히 파악

"준명이는 꼭 콩나물만 먹고, 헬렌은 감자만 그렇게 먹어요.” 주 6일씩 7년간 장애인단체 코코(COCO)에서 봉사를 해온 유영자씨. 매주 토요일 순복음뉴욕교회에서 진행되는 장애인단체 코코에서 점심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밥순이’를 자처하는 그는 장애아 한 명 한 명의 식습관을 모두 꿰차고 있다. 정신 지체아들과 봉사자들까지 40명을 먹이려면 아침 9시부터 꼬박 3시간은 준비해야 한다. 한 음식만 먹는 아이용 음식을 만들고, 잡채와 야채볶음 등 야채가 많이 들어간 식단을 짠다. 12시에 점심 먹이고, 1시쯤 설겆이가 끝나면 또 곧장 간식 준비. 떡볶이, 핫도그, 과일 등 아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준비한다. “무슨 돈이 있어 그렇게 잘 먹이느냐”는 이상한 핀잔을 들을 정도로 코코 식단은 푸짐하고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전업 주부인 유씨는 평일에는 코코 방과후학교에서도 봉사를 한다. 6명 정도 모이는 장애아들과 함께 오후 2시30분부터 4시간 가량 숙제와 간식 등을 맡고 있다. 가족들이 오후 9시 넘을 때까지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 마냥 기다린 적도 허다하다. 처음에는 아이들 대소변 처리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이고~ 그건 문제도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일요일을 빼곤 주 6일을 코코에서 봉사하는 그는 “자원 봉사가 풀타임 잡”이라면서 웃는다. 지난 7년간 한국에 3주 다녀온 것 빼고는 무단 결석을 한 번 안 한 장기 근속자다. 그 때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 국제 전화를 걸어 시시때때로 안부를 챙겼을 정도로 ‘코코 중독 증세’가 심하다. 유씨의 표현대로 “코코에 코를 꿴”이유는 아들 유영재씨가 코코에서 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남편 유병수씨와 함께 “아들이 무슨 일 하나~” 한번 둘러보려던 것이 계기였다. 그때, 청소년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여태껏 뭐했나”라는 충격을 받았다고. “특수교육 전공을 한 것도 아니니 주방에서 음식이나 만들자”면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간에 트럭 운전을 하는 남편도 자신을 낮에 집에 홀로 남겨두고 코코로 출근하는 아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유씨는 코코가 준비 중인 한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 그룹홈이 세워지면, 그 곳에 아예 들어가 살 작정이란다.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18세 이상 불법체류자 장애인들을 보듬을 곳은 이같은 그룹홈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현재는 자본도 없고, 돕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도 없다. 아예 “내가 낸 세금으로 왜 불체 장애인을 돕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유씨는 한인 2세 특수 교육자들이 많이 배출되길 고대하고 있다. 그는 “한인 가정과 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에 미국서 태어난 한인 장애인들만의 특수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특성을 잘 이해하는 2세 특수 교육자들이 나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진화 기자 jinhwa@koreadaily.com

2009-12-04

[송년 기획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여든, 불편한 몸이지만 독거 노인의 다정한 말벗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더 외로운 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다. 그러나 남 모르게 불우한 이웃, 외로운 노인과 홈리스들을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있다. 한인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는 이들 봉사하는 삶, 아름다운 삶을 찾아 가 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요 조만간 찾아뵐께요.” 플러싱 뉴욕효신장로교회 지하실에 있는 뉴욕한인봉사센터(KCS) 플러싱경로회관 사무실. 사무실 한쪽에서 원용신 권사(80)는 아침부터 혼자사는 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신도 거동이 불편해 잘 다니지도 못하면서 다른 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보내는 원 권사. 원 권사가 KCS에서 가정급식을 받는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다른 노인들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원 권사가 하루에 방문한 노인들은 평균 3~4명, 그러나 한 아파트에서 여러 가구가 모여있으면 10여집도 방문하기도 했다. 플러싱과 우드사이드, 엘름허스트 등 지역을 나눠서 다녔는데, 차도 없이 걸어서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이들 노인들을 방문했다. 원 권사가 방문 봉사 대신 전화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 기력이 쇠잔해져서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봉사활동을 접을 수는 없어 전화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94년부터 미국으로 이민, 현재 엘름허스트에서 아들 유재춘씨와 며느리, 손주, 손녀 등 4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원 권사는 지금도 매일같이 오전 7시까지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플러싱 경로회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전화 봉사 외에도 아침에 경로회관에서 식권을 팔기도 한다. “지금이야 내가 거동이 불편해서 찾아다니지 못하지만, 건강만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노인들을 찾아가고 싶어요.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화 상대에요. 날 반기며 웃는 노인들 얼굴이 아른거려 방문봉사를 중단한다는 게 괴로웠어요.” 원 권사의 희망은 기력이 나아져서 전화대신 직접 노인들을 찾아 가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봉사를 하고 싶어요. 조만간 노인들을 한 번 찾아가야 할텐데…” 원 권사의 눈빛에는 기대와 희망이 가득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200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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